별족 님
아름답지 않으면, 시가 아니라고. 그래서, 서정주의 삶과 무관하게 그의 시에 소름이 돋는 걸 어쩌지 못하면서도, 난 아름답고도 간절하게 정의로운 시들과 시인의 삶을 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책임때문에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을, 눈을 부릅뜨고 살얼음판을 걷듯 노래하던 시인들을 보면서 난 또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나고, 목소리가 떨린다.
경찰 곤봉에 맞아 죽은 시위대를 보면서, 다시 그 비장함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인가, 질문받으면서 생각한다. '죽임을 당한데도 할 수 있겠어?'라고 묻는 게 아니라, '이게 소중하다'는 확인만을 요구해야 하는 거라고. 폭력으로 무언가를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야만을 규정한 채로 답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목숨을 건 비장함으로 움직인 게 아니라, 눈돌려 못 본 척 할 수 없는 애정때문에 간신히 살아내는 삶의 일부였던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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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님
"임종이 임박했다는 새벽 전화를 받고 고려병원에 달려갔을 때의 일이다. 황달이 퍼져 샛노란 눈빛의 김남주가 주변을 돌아보며 외쳤다. ˝개 같은 세상에 태어나 개처럼 살다가 개처럼 죽는다. 부탁한다. 남은 너희들은 절대로 이렇게 살지 마라!˝ 그의 숨이 끊어지고 난 뒤 병실 복도에 나와 나는 나에게 다짐했다. 빗방울 하나에도 절대 살해되어서는 안되겠다고!"
마지막 문장은 김남주가 옮긴 브레히트의 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의 마지막 행에서 차용했다고 시인은 덧붙였다.
잠시 브레히트와 김남주와 개 같은 세상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개처럼 살지 말아야 할 사명에 대해서도. 어젯밤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사건의 억울한 희생자들에게도 세상은 얼마나 개 같았을 것인가. 우리는 빗방울 하나에도 절대로 살해되어서는 안될 사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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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브레히트의 여러 작품을 접하다 보면, 한 작가에게 이토록 극단적인 양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랄 수가 있다. 그 말은 곧 그에게 세상과 인간, 그리고 문학이 서로 별개의 사물들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리라. 독자로서 나는 브레히트를 비교적 늦은 시기에 만났고 ― 현재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이 생소한 이야기겠지만 80년대만 해도 브레히트는 한국에서 일종의 금지된 작가에 속했다. ― 그것도 하필이면 연시(Liebesgedicht)를 통해서였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브레히트를 창날처럼 아름답고 날카로운, 그러나 도무지 명확한 한 가지 의미로 풀어낼 수 없는, 지독하게 난해한 언어의 연시 작가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이 생각은 완전히 틀린 것도, 완전히 맞는 것도 아니었다.
...내게는 작가로서 브레히트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문학과 예술의 교사, 앙가쥬망, 세상을 혹은 인간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잃지 않았던 시대적 행동가를 넘어서는 작가라는 믿음 말이다.
_ 배수아, 브레히트 <전쟁교본> 역자 후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