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니쉬는 짧은 이야기를 통해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 수 있는 작가이다. 그의 이야기들은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터무니없기도한데, 그 안에는 철학적인 면이 있다. 그의 간결한 문장은 의미가 깊고, "적은 양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는 말이 야니쉬의 작품에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야니쉬의 책들은 모든 세대에게 다가가는데,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큰 영감을 준다. 게다가, 그는 책을 쓰는 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 읽기와 창작 활동 워크숍도 진행 중이다. 장애가 있는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 워크숍도 주최하고 있답니다. 다층적이고 감동적인 야니쉬의 글이 바로 우리 모두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이유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만의 왕이 자리 잡고 있다. 때때로 불쑥 나타나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얼토당토않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속 왕의 뜻에 따라 행동해서는 안 된다. 형식과 권위를 내려놓고, 각각의 존재들을 인정하고 존중했을 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 책에 담긴 진정한 의미이다.
우리 일상과 사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편을 가른 싸움과 전쟁을 돌아보게 하는 그림책이다. ‘내 편’이 아닌 ‘네 편’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사람들을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눈으로 지켜보게 하며, 현실에서 우리가 벌이는 편을 가른 싸움과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일인지 보여 준다.
새롭고 깜짝 놀랄 일들 때문에 크라토치빌 선생님은 항상 늦을랑 말랑, 지각하기 직전에 학교에 도착한다. 아이들도 매일같이 선생님의 늦을랑 말랑 이유가 궁금하고 흥미롭다. 크라토치빌 선생님 반 아이들은 절대 지각하지 않는다. 왜냐고?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유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듣기가 이야기에 접근하는 내 방식이다." 시드니 스미스의 작품은 마지 시각적 서사나 짧은 기억처럼 느껴진다. 이는 그가 이야기에 접근하는 방식이 '듣기'라는 발언과 일치한다. 그가 그리는 그림 속 주인공들은 겸손하고 진정한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는 자연, 냄새 그리고 이야기에 잘 어울리기 위해서만 색을 사용한다. 감정을 표현할 때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며 그리는 것을 선호한다. 유니버셜한 아티스트라고 칭하기에 충분하다.
아이는 아침마다 할머니가 좁은 부엌을 오가며 춤추듯 차려내는 아침을 먹고 함께 학교에 간다. 이제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에게 생명력을 돌려주고 싶은 아이의 사랑이 봄비처럼 마음에 스민다. 시적인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글과 아름다운 그림이 어우러진 작품.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 낯선 도시를 헤매는 아이의 목소리를 통해 거대한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격려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작은 존재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 낸다. 소중한 존재가 안녕하기를 바라는 아이의 마음을 담은 섬세한 글과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연출이 돋보인다.